명절을 보내고

명절에 집에 다녀오면 내 삶에 물결이 친다. 그리 잔잔한 삶도 아니지만, 부모가 던져놓은 말들을 그저 흘려듣기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이번 설 연휴 마지막 날 화두는 ‘교회’였다. 숨기려고 했지만 이젠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섯살 아들의 입까지 봉해버릴 수는 없는 일.

지금 나를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내 삶에 교회가 들어 있다는 데 크게 놀랄 테다. 그러나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은 나는 모태신앙이고, 주일이면 교회를 빠지지 않는 충직한 신자였다는 점이다. 아직도 어떤 사건 때문에 주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고 보낸 그 하루의 어색함이 기억난다. 그만큼 주일은 소중한 날이었다.

여튼 지금은 교회를 안 나가고 있다. 이렇게 커밍아웃(?)하는 것은 이제 그럴만한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생겼기 때문이다. 며칠 전 예전 연구실과 청어람 등에서 함께 공부하던 분과 통화했다. 교회사 세미나를 같이 했는데 교회에 입은 상처를 감싸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단다. 요즘도 기독교 관련 세미나를 하신다고. 교회를 어디 다니냐는 질문에 요즘은 안 간다고 대답했다. 자연스럽게. 때가 된 것이다.

교회를 안 간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고 난 뒤에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는 마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를 가려고 생각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교회를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회는 가지 않지만 신앙을 버리지는 않았다.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면 신앙을 버릴 수 있는가 질문해 보기도 했고, 신앙을 버려야 하느냐는 질문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이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어서, 나는 이 세계 사람임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럼에도 교회는 갈 수 없다.

부모와의 말 다툼에도 꺼낸 말이지만, 교회를 가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 되지 않는 게 아니라, 교회가 이런 꼴인데도 교회를 나가는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내뱉은 교회가 성스러워야 하는 데 쌍스러워 못 가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교회내 신앙이 가능한지가 묻고 싶은 상황이다. 돌 위에 돌 하나도 없이 무너져야 한다는 예수의 말이 오늘날 한국 교회가 들어야 할 말 아닌가.

이럴 때 꼭 나오는 말이, 사람을 보면 늘 실망한다, 사람 보고 교회 가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말. 한편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건 아니지 않느냐, 그렇지 않는 데가 있지 않겠냐는 말. 그러나 거꾸로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려 한다면 교회라는 건물과 조직이 무슨 필요란 말인가. 예수의 한 몸 된 교회를 말하면서도 그 몸의 망가짐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지 못하는 그런 미꾸라지 같은 말에 신물이 난다.

어제 서점에 가서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이란 책을 사왔다. 생각보다 얇교 피상적인 이야기라 살짝 실망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나와 같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 하나의 현상이며 흐름이라는 데 놀라긴 했다. 이 책을 읽어보며 내 현 위치를 진단해 볼 생각이다. 앞 부분을 읽었는데 흥미롭다. 풀어놓을 말들이 슬슬 생길 듯 싶다.

메일 보내기

아무 내용이나 상관 없어요. 메일을 보내주세요.

보내는 중입니다..
또는

로그인하세요.

계정 내용을 잊으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