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감동하셨습니까?

  • 지난 12월 14일에 인트라넷에 올린 글이다. 채플에서 김영길 총장은 고별 인사를 했고, 그의 눈물에 많은 학우가 감동했다. 그러나 그 감동은 여러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은 물론, 고질적인 문제를 확연히 드러낸다. 김영길을 신봉하는 자들, 사실 ‘믿음’이란, ‘신앙’이란 바로 그것이다. 총장에 대한 무한 신뢰. 아니, ‘김영길 총장님’에 대한 믿음.

1.

그래 다들 감동하셨습니까? 19년 총장의 영상을 보고 다들 감동하셨습니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뭉클하셨습니까?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까?

한 인간이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사과를 요청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퍼포먼스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 사과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바꿀지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 Change! 바꾸자는 이야기를 그렇게도 입에 달고 살던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바꾸렵니까? 아니, 바꿀 것이나 생각하고 있답니까? 그저 상처나 끌어안고 빨간약이나 찾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2.

총장’님’이 우셨답니다. 그래요 그 눈물이 금싸라가였나봅니다. 지난 19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한 방울의 눈물로 산화 되었습니다. 성화 되었습니다. 성수가 있다면 바로 그곳에 떨어졌겠습니다.

인간 김영길에 대한 사랑을 뭐라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총장 김영길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기는 한답니까? 두 손모아 감동한 그대는 과연 김영길의 과오를 평가할 수나 있겠습니까? 대학 총장의 퇴임이 이렇게도 감동적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대학에도 총장의 퇴임이 그렇게 감동을 자아낸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총장은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경영자입니까? 아니면 대학 행정 전문가입니까? 아니, 당신들의 마음에 있는 총장이란 하나의 아이콘, 우상이 아닙니까?

3.

소통이 문제랍니다. 소수의 의견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 들을 귀가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런 체제가 없었기 때문입니가?

정관개정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들 정관 개정 따윈 관심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한동대라는 것이 법과 규율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9년의 총장직은 합리적인 재신임 과정을 거쳤습니까? 한 번이라도 김영길 이외에 다른 총장을 생각해보기나 했습니까? 모세라 칭한 건 김영길 자신이 아닐 겁니다. 모세가 필요한 건 바로 광야에서 물을 찾아 애쓰던 목마른 그대들 아닙니까? 우물을 팔 의지도, 힘도 없던 그대들이야 말로 모세를 필요로 했던 가엾은 백성 아니랍니까? 할 말이나 있답니까? 소통은커녕 할 말도 없고 대화의 자리에 설 의지도 없는 건 아닙니까?

4.

인간 김영길이 나빴던 겁니까? 아니면 보직 교수들이 나빴던 겁니까? 아니면 총장이라는 지위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겁니까? 아니, 사실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거 아닙니까?

권력이란 그것이 작동한 방법을 보고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그가 진심이었는가, 마음을 쏟았는가는 별개입니다. 권력의 크기만큼 책임의 크기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낭만에 젖은 그대들은 그 책임도, 권력의 잔혹한 속성도 진심 하나로 그저 뭉뚱그려 너그러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눈에는 국부 이승만이, 박정희 각하가 여전히 아름다운 우상으로 자리 잡아 있는가 봅니다. 지나친 비약이라구요? 아니, 난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대학은 곧 총장이고, 나라는 곧 대통령이라는… 당신들의 낭만이 나는 똑같이 유치하게 보입니다.

5.

김영길의 희생으로 19년간 한동대학이 성장했답니까? 그동안 수고한 교원들과 직원들, 허허벌판에서 삽질하다시피 맨땅에 헤딩한 학우들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랍니까?

김영길이 희생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신트로피’라는 신 조어를 만들 정도로 커다란 지위를 얻었습니다. 스스로도 고백했듯 19년간 총장직을 한 사람이 어디랍니까? 게다가 총장을 그만둔 뒤에도 그를 위한 자리는 여전히 있습니다. 창조 과학은, 창조 경제는, 학부 중점 대학은… 그 모든 것이 희생과 주님의 인도하심의 결과랍니까? 김영길이 없었으면 19년간 한동은 포항 구석에서 그렇게 썩어간 학교였을 겁니까? 거꾸로 19년 한동대의 성장에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김영길 아닙니까?

6.

20년 내내 한동 대학은 위기랍니가? 재단이 없어 빌빌거리고, 무엇이 없어 아쉽고… 게다가 불투명한 미래까지 있어서 위태하고. 한동 대학은 바람 속에 휘둘리는 한 떨기 작은 불꽃이랍니까?

학교의 위험을 걱정하는 소리는 반은 맞습니다. 한동대학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겁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대학 입학생 수가 줄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 학교가 휘청거리기 때문도 아닙니다.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어쭙잖은 결합이 이제는 닳고 달아 신앙, 우상의 신봉으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학문적 탁월성? 과연 그런 것이 자리잡을 수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나아가 학교의 본질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대학이라 하지만 사실은 김영길의 대학이었기에 총장 김영길 없이는 어떻게 학교가 굴러갈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창조 경제가 있고, 핵융합 발전이 있고, 정권의 비호가 있지만 김영길이라는 표상이 사라진 한동의 껍데기 아닙니까? 아, 맞습니다. 그는 이사장으로 재림하리니 그대들의 소망이 헛된 것은 아니겠습니다.

7.

하느님의 대학이란 게 대체 어디 있답니까? 그 유명한 십계명의 제 1, 2 계명은 이제 무의미만 것이 되었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은 아무 데나 가져다 쓰고, 하느님을 대신하는 적절한 우상까지 있지 않습니까?

신학적 통찰도 신앙적 순수함도 사라져버렸습니다. 19년이나 되었지만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거죽조차 이젠 헤어졌고, 교목은 권력에 딸랑거리는 나팔수에 불과합니다. 그래 당신들이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이란 어딨답니까? 믿음의 능력이란 무엇이며, 고백이란 무엇인지 대체 모르겠습니다. 한동이 공동체라는 말도 틀렸습니다. 하느님의 대학이라는 모토도 글렀습니다. 총장을 신봉하는 자들과 총장을 신봉하지 않는 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영혼의 깊이는 사라졌고. 신앙과 불신, 믿음과 배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배신자가 되겠습니다. 값싼 믿음을 내어버린 나에게 이제 돌을 던지시오.

8.

본래 싸울 일도 아니었습니다. 크게 소란을 피울 일도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의 지성소에 모신 그분을 내가 어찌하겠습니까? 다만 나는 이제 당신들의 지성소에 침을 뱉긴커녕 내 이웃을 위해 울려합니다.

보니 나는 학교를 사랑하지도 않았고, 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졸업한 학교 따위를 사랑해야 하는지, 자랑스러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에 나가 간판으로 쓰려니 쓸만하지도 않고, 게다가 잊혀진 일들을 다시 떠올리기도 귀찮습니다. 다만 화가 나고 짜증 나는 일입니다. 성질이 나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성질나는 일이 있답니다. 추운 겨울 길바닥에 나 앉은 사람들이 있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목숨을 끊겠다며 하늘을 저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포항 가까운 밀양에, 우리 집 가까운 서울역에 있답니다. 내가 보기에 이게 더 중요합니다. 너님들의 학교는 사랑으로 평안하세요. 나는 불의에 분노로 밤잠을 설칠 테니.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랑을 모르겠습니다. 세상엔 따슨 밥을 먹고 포근한 잠자리에 눕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디찬 바닥에서 오늘도 밤 이슬을 맞아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값싼 말처럼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도 거짓입니다. 사랑은 너님들끼리 잘 나눠 먹고 드세요. 난 그냥 성질내며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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