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무엇을 주장할 것인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 학내 인트라넷에 써놓았던 글을 옮겨둔다. 지난 11월 23일 쓴 글이다. 이쯤 되면 한동대학교 관련 글을 모아 두어야 할까?

0. 질문과 정리

재학생의 시위 소식을 보고, 밖에서 응원차 무엇이라도 행동하려고 했다. 23일 교보문고에서 계획되었던 김영길 총장의 사인회에 ‘집안망신’을 준비했지만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무기한 연기되었기 때문. 현 사태에 대한 글을 써서 돌리고, 피켓 시위를 계획했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으나 글이 나가지 않았다. 그때 든 질문이 이것이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무엇을 주장할 것인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19년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신임 총장이 발표되자 학내 여론이 들끓듯 일어났다. 재학생의 집단 시위가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총동문회, 총학생회, 교수 협의회에서도 성명을 내놓았다. 대부분은 이사회의 소통 방식에 불만을 표하는 글이었다. 각각 적절한 노력과 조치(총동문회), 공식적 사과(총학생회), 소통에 대한 요구(교수협의회)를 요구하는 글이다.

유래 없는 큰 소요 때문인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민한 대응을 볼 수 있었다. 1)장순흥의 여러 혐의에 대한 해명 2)이사회의 소통 부족에 대한 사과가 올라왔다. 게다가 3)언론에 먼저 알린 점에 대한 법인 팀장의 사과까지 올라왔다. 자, 어떻게 보면 이사회의 입장에서는 요구한 사항을 다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정해진 일정은 11월 27일 수요일, 장순흥 신임 총장의 방문이다. 교수 예배와 학부장 회의, 게다가 채플 인사까지. 신임 총장인선 인한 소란을 빨리 잠재우려는 시도가 보인다. 서두르는 것은 나름 이해된다. 지금까지 한동의 역사를 보면 27일이 분수령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이날 간단한 사과와 신앙 고백, 사랑의 수사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신임 총장 방문에 앞서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무엇을 주장할 것인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1. 김영길 총장이 사과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평교수연대의 글은 문제의 핵심을 환기 시킨다. 신임 총장의 인선과정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지만 사실 원인은 김영길 총장의 지난 19년간 행적에 있지 않은가? “그 동안 한동대학교는 김영길의 대학으로 인식되었다.” 틀린 말인가? 김영길 총장이 ‘총장’이라는 직함을 넘어, 모세이자 느혜미야라고 추앙받지 않았나. 하느님의 대학은 사라지고, 김영길이라는 이름만 남은 것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까. 명예총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사장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솔직해지자. 총장 인선 과정이 불투명하며, 교내의 어떤 여론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난 19년간의 유구한 전통 아니던가. 학생들의 요구는 물론이거니와 교수들의 여론까지도 무시당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소통 불능의 사태는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 지금의 사태는 19년 한동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

한동대의 이사회가 가진 특수한 성격에 주목하자. 사실 한동의 이사회가 가진 권력이란 무엇인가? 중요한 사태를 결정할 수 있는 의결권을 가지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권위와 권력이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지난 9월 올라온 송성규 교수의 글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재단이 없는 한동의 특성, 게다가 이사장에게 아무 권력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한동의 주인은 김영길 총장이 되었다. “총장이 선임한 이사장과 이사들이 자신들을 선임한 총장을 다시 한동대학교의 총장으로 추대하는 형태’가 우리 대학의 지배 및 권력 구조의 실제적 모습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회에 책임을 묻는 것은 우문이다. 지금까지 이사회는 김영길 총장에 의해 꾸려졌고, 이사회는 김영길 총장의 연임을 보장해주었다. 신임 총장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있을까?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신임 총장 건을 처리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이 화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거수기가 된 이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아니고 무엇인가?

김영길 총장이 사과해야 한다. 불통의 학교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 재단도 이사회도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홀로 권력을 휘두른 자가 누구인가? 권력을 사유화 한 것이 누구인가?

2. 장순흥은 신임 총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론에도, 학내에 공개된 정보에도 가리고 있는 것이 있다. 카이스트 홈페이지에 공개된 장순흥의 이력을 보면 이미 2007년부터 한동대 이사로 있다. 2009년에는 이사장 대행으로 있었으며, 2010년부터 바로 작년까지 이사장으로 있었다. http:://goo.gl/UvY3Kf

대학의 조직 구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지난 해까지 이사장이었던 사람이 총장으로 온다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란많던 신임 총장 문제는, 이사장을 총장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이쯤되면 왜 신임 총장을 찾기 위해 그토록 공을 들이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이미 신임 총장은 정해져 있던 게 아닐까? 아니 적어도 ‘총장을 청빙’하겠다는 생각이 없던 건 아닐까? 이사회 내부 인사 가운데 신임 총장을 뽑으려던 건 아닌가.

‘장순흥 후보’라고 공개된 파일의 후보 의향서와 추천서를 보자. 후보 의향서 가운데 3번 학교의 운영을 위한 재정 부분을 보라. 두번째 문단은 이렇다. “특히 교학부총장 재임기간에는 서남표 총장과 함께 연구비를 비롯한 학교 예산 확보 …… 대형 연구시설과 체육시설을 신축하는 등 인프라 확대에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2008년 우리나라 개인 최고 기부를 하신 (고)류근철 박사님이 578억을 카이스트에 기부할 때에도 (고)류근철 박사님과 깊은 인간적인 교류와 신뢰감, 그리고 감동과 진심이야 말로 진정한 기부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고)류근철 박사님과의 교류는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첫번째 추천인 David E. Ross(오대원)의 추천서 내용 가운데 Fundraising Capability를 보자. “장순흥 교수는 카이스트 보직기간 동안 학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특히 교학부총장 재임기간에는 서남표 총장과 함께 연구비를 비롯한 학교 예산 확보 …… 또한 2008년 (고)류근철 박사님이 578억을 카이스트에 기부할 때에도 (고)류근철 박사님과의 깊은 인간적인 교류와 신뢰감으로 카이스트에 기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 알겠는가?

두번째 추천인 손인웅 목사의 추천서를 보자. 역시 같은 부분. “장순흥 교수는 카이스트 보직기간 동안 학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특히 교학부총장 재임기간에는 서남표 총장과 함께 연구비를 비롯한 학교 예산 확보 …… 2008년 姑류근철 박사님이 578억을 카이스트에 기부할 때에도 …… 학교운영 및 재정모금 등 느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느력’이란 내 오타가 아니다. 똑같은 내용이 아니라는 말씀?!

세번째 추천인 서남표 총장의 추천서. “장순흥 교수는 카이스트 보직기간 동안 학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 이젠 타이핑 하기 귀찮다. 알아서 봐라. Ctrl+C와 Ctrl+V 신공을 볼 수 있을테니. 다행히 네 번째 대전 새누리교회의 이병균 목사의 추천서는 내용이 다르다.

한마디로 총장 후보가 제출한 문서 자체가 졸속이라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내용이 같은 세 추천서, 즉 오대원, 손인웅, 서남표의 추천서가 작성된 날짜이다. 자료에 따르면 오대원과 서남표의 추천서는 각각 9월 16일에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다. 손인웅의 추천서는 날짜가 없다. 즉, 내용이 같은 세 추천서는 같은 날짜에 졸속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장순흥 본인의 ‘후보 의향서’와 마지막 이병균의 추천서 날짜의 불일치는 어떻게 볼 것인가? ‘후보 의향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족한 저를 추천하여 주신, 서남표 (전)카이스트 총장님과 David E. Ross 오대원 목사님, 손인웅 목사님, 이병균 목사님의 추천과 권유에 감사드리며, 귀대학의 총장 후보 추천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락합니다.’ 이것이 10월 2일 날짜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이병균의 추천서는 10월 16일이다. 이 불일치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사회에 묻고 싶다. 과연 이런 졸속 자료를 보고도 장순흥을 총장으로 선임할 수 있는지. 게다가 ‘총장 후보 의향서’에 쓰인 ‘귀 대학의 총장 후보 추천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락합니다’란 무엇인가? 나에게 총장 자리를 준다는 것을 받겠다는 말로 읽힌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나는 궁금하다. ‘후보 의향서’는 누가 언제 썼으며, ‘추천서’는 과연 누가 언제 썼는가?

이런 졸속보다 더 큰 문제는 장순흥이 총장이 될 경우 지난 19년의 잘못을 다시 반복한다는 점이다. 총장과 이사회가 혼연일치가 되어 학교의 권력을 독점하는 사태가 여전히 지속할 것이라는 말이다. 권력은 독점하면 썩는다. 권력의 사유화란 다른 말이 아니다.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 이때 권력은 그 누구의 것이 된다. 지난 19년간 한동의 권력은 김영길 1인이 쥐고 있었고, 이러한 전철이 반복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장순흥은 신임 총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가 다양한 부정부패의 의혹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사회의 일원이 前이사장이 총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이것이 용인된다면 前총장이 신임 이사장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이런 졸속으로 신임 총장을 맞이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인가?

3.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총장 선임이 처음부터 다시 진행되어야 한다. 재학생과 교수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학내 의사를 반영하여 새로 총장을 선임해야 한다. 너무 늦었다고 걱정하지 말자. 잘못 끼워졌던 단추를 다시 제대로 끼우기 위해서는 잘못 끼워졌던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처음부터 잘못되었으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의 권한뿐인 정관부터 새로 고쳐야 하겠다.

더 큰 문제는 지난 19년 동안 지속되었던 김영길이라는 우상을 부수는 일이다. 총장 1인에게 집중되었던 권력과, 상징적 권위를 되찾아와야 한다. 아마 이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홍역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 총장을 빼면 허수아비와 같은 이사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문제다. 한편 한동대는 ‘하느님의 대학’이라는 구호에 걸맞지 않게 자본이 권력이 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모금 능력이 곧 권력이 되는 현실. 과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간단치 않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19년간 이야기했던 ‘하느님의 대학’이라는 구호보다 현실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경험을 축적하고 기억하는 일, 이것이 중요하다. 지난 19년간 한동에서는 신앙 고백의 역사는 있었다. 그러나 회자되는 학내 문제를 역사화하고 기억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은 한동이 지나치게 신앙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정치적 신앙’에. 흔히 갖고 있는 잘못된 인식 가운데 하나는 정치와 신앙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유영익 석좌 교수 사건을 보라. 아버지 때부터 박정희-박근혜와 연을 같이한 장순흥이 총장으로 선임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개교 이래 한동이 이처럼 정치적 편향성을 두드러지게 보인 적이 있던가?

미안하게도 나는 방관자에 가깝다. 내 시선은 냉소에 가깝다.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학내 소식을 들으면서 바뀌었다기 보다는 악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곪은 것이 터질 때에야 비로소 치료를 할 수 있는 법. 어쩌면 무엇인가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물론 치료는 고름을 철저하게 짜 내고 해야 할 일이다.

메일 보내기

아무 내용이나 상관 없어요. 메일을 보내주세요.

보내는 중입니다..
또는

로그인하세요.

계정 내용을 잊으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