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갑갑한 소식이 계속 들여온다. 누가 나를 총동문회에 초대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원망스럽다. 내가 총동문회에서 확인하는 것은 불변不變의 불통不通! 한동의 왜곡된 권력 구조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현 총학생회장은 비분강개(悲憤慷慨)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차기 총장 선임에 대해 학생들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현실을 토로하는 글이다. 고립무원의 그곳에서 홀로 외치는 목소리가 안타깝다.

이어서 김영길의 저서를 소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책 제목이 ‘신트로피 드라마’란다. 엔트로피라는 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는, ‘타락한 모든 피조물을 변화시켜 만물을 회복하’는 내용에 관한 책이란다. 나는 이 책이 신앙 고백에 관한 것인지 과학에 관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총동문회에서 전체 메일로 ‘저자 사인회’에 동문을 초청하는 꼴이 우습다.

부패하는 사회가 아니라 회복하는 사회를 이야기한다는 김영길은 이 와중에 어디에 있는가? 그래 당신이 20년간 총장으로 재직한 한동의 현 주소가 ‘회복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나는 그 이야기에 비웃음을 그칠 수 없다. 회복은커녕 20년간 더 엉망으로 망쳤기 때문이다. 학내 문제를 이야기하는 교수들의 이야기는 소음으로 처리되었고, 학생들의 의견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나는 여기서 터럭만큼도 은혜를 발견할 수가 없다.

나는 분노한다. 나에게 남겨진 한동의 소중한 배움이 사라짐에 대해.

친총장파와 반총장파로 나누어 이야기한다면 나는 반총장파다. 아니, ‘김영길 총장님’은 커녕 ‘김영길’이라 언급했으니 이제 반총장도, 친총창도 아니다. 학내 분규를 일으키는 못된 세력이라 부르라. 맞다. 한동에는 분규가 필요하다. 소란이 필요하며 찢어짐이 필요하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성서를 읽지 않기 때문에라고 나를 비난하라. 그렇다. 나는 당신들의 기대 속에 있지 않다. 빨갱이라 불러도 좋고, 사회 전복 세력이라 불러도 좋다. 믿음 없는 자라 불러도 좋고, 사탄이라 불러도 좋다. 무어라 욕하던 좋다. 나는 내가 배운 것을 그대로 고백할 뿐이다. 말할 뿐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새내기 시절 내 모습과 지금의 나를 두고 괴리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한때 나도 홀리holy한 사람이었으며, 영성을 추구하는 무릎 꿇는 사람이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었고, 기도실에 눈물 뿌리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교회를 버린 가나안 성도(?)이며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성서를 보지도 않고,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은 그렇기에, 믿음을 져버렸기에 나의 말이 들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리라.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한동에서 배운 것은 그런 싸구려 믿음이 아니었다고. 도리가 내가 배운 것은 진실을 말하는 용기였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진정성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스승을 만났고 친구를 만났다. 나에겐 이 배움이 소중하다. 세속적(!) 판단으로 보자면 나는 신자信者에서 불신자不信者가 되었지만 오히려 나는 내 고백대로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살겠다.

얼마 전 좁은 기숙사에서 반복해서 듣던 노래를 어느 식당에서 다시 들었다.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나는 내가 뱉었던 말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거짓된 사람이리라.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위해 사는 삶’, ‘거짓되지 않은 삶’을 살아내겠다는 ‘고백’은 내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이다. 그래서 나는 권력의 편을 들 수 없다. 불의에 동조할 수 없다.

누군가는 김영길이 20년간 한동을 청년으로 키웠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거기에서 성장이 있는가? 아니, 나는 도리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한동대학교에서 최소 15년 이상 근무해왔습니다.’라는 평교수연대의 글을 보며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15 년 넘게 목 터져라 외친 결과가 고작 이것이다. 18일, 주말이 지나면 이제 새 총장이 발표될 것이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이제 한동은 나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고 물을 뿐이다.

어디서도 한동대를 나왔다고 자랑한 적 없지만, 누군가 대학을 물으면 앞으로 지잡대를 나왔다고 말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생각을 접었다. 학교에 남아있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다. 한동에 대한 나의 시계는 멈춰 있다. 그러나 한동은 거꾸로 갈 뿐이다. 이제는 모교도 무엇도 사라질 것 같다. 한동은 대체 나에게 무엇을 남길까.

나는 분노한다. 나에게 남겨진 한동의 소중한 배움이 사라짐에 대해.

세속적 신앙은 소란을 잠재우기 원한다. 나는 기도 속에 사랑의 수사 속에 영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을 등에 입고 승승장구하는 성공 속에 영성은 없다. 영성은 가난한 영혼에 깃드는 보물이다. 진실과 벗하는 선물이다. 나는 ‘하느님의 대학’을 운운하는 한동에 영성이 있는지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위기 속에 한동의 안위를 걱정하는 하는 이들에게 걱정 말라고 말하겠다. 한동대학은 앞으로 제법 성공한 대학이 될 것이다. 신임 총장의 면모를 보건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슬퍼하라. 갈대상자가 아니라 이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가 내리리라.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불평 많고 어리석은, 믿음 없는 자라고 손가락질 하리라.

나에겐 슬퍼하고 분노할 이유가 있다.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묻는다. 한동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나는 분노한다. 나에게 남겨진 한동의 소중한 배움이 사라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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