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그만 사랑하자.

  • 한동대학의 총장 이취임 문제로 시끄럽다. 학내 인트라넷에 쓴 글을 옮겨둔다.

1. 사랑이라는 이름의 까방권

한동대학은 사랑의 대학이라 불러 마땅하다. 왜냐하면 사랑이 넘치는 대학이니까. 그런데 이때의 사랑이라는 게 재미있다.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감싸주는, 모든 것의 면죄부를 주는 그런 사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평하는 자의 입이여, 너에게는 사랑이 없노라.

한편 이 말은 믿음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우리는 주의 자녀된 자로서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해야 하므로. 사랑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주의 자녀가 아니다. 따라서 그는 적이며, 사탄의 입술을 가진 자이다. 사탄의 입을 막을 지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치트키는 작동할 태세다. HGUs’ Village의 분노 게이지를 잠재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I Love Handong을 치면 ‘사랑해요 총장님’이 되돌아 온다. 아… 아름다운 저 환호성. 문제는 해결되었고, 이제 중요한 것은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아직도 입이 삐쭉나온 저놈은 돌로 쳐 없애라.

이게 20년이 지나도록 업데이트 안 된 HGUs’ Village 지속적 버그, 고질적 문제,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학교에 대자보 하나 마음대로 붙이지 못하는 것도 자랑스런 전통이다. 학교의 리더십이 진심을 내세워 자신의 부정한 짓을 부끄럽지 않게 까발리는 것도 자랑스런 전통이다. ‘총장님’의 ‘님’자를 빼지 못한 것도, 재정적으로 어려운 학교의 넋두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것도, 총장님 총장님 영길 총장님을 주문처럼 외는 것도 다 20년 묵는 전통이다. 영원할지어다!

역시 이쯤 되니 이런 말이 나온다. 그렇게 학교에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직접 학교에 와서 뭐라도 해보시던가. 너는 얼마나 세상을 바꾸었기에 한동을 바꾸겠다고 설쳐대느냐는 힐난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 애교심 따위는 접어 두자. ‘애정’이라는 말을 진정성 있게 쓴다면, 차라리 김영길 퇴진 운동을 벌여야 했으리라. 아니, 한동대학에 가득 찬 지독히도 좁고 어두운 보수적 신앙부터 깨뜨렸어야 했으리라. 오늘도 바쁜 시간을 쪼개 몇 글자를 보태는 것은 사랑하기보다는 분노하기 때문이다. 20년간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잘못에서 벗어나 보려는 몸짓이다.

 

2. 그런 사랑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말처럼 남용되고 오용되어 이제는 그 뜻조차 질문하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사랑은 감싸주기다. 사랑은 닥추, 닥치고 추천하라는 명령이다. 사실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친목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은 내가 너와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너는 사랑이 없기에 신앙이 없고, 나는 사랑이 있기에 신앙이 있다. 관심법觀心法이 아닌 관신법觀信法.

비단 이것은 한동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의 신앙이란 이런 것이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사랑의 교회’를 보라. 사기꾼을 목사로 앉혀놓고도 사랑으로 감싸주지 않는가. 세속에 물든 교회는 서초동에 빛나는 성전을 쌓았다. 성전의 영광이 서초동의 세리들과 관원들을 눈멀게 하리라.(http://goo.gl/ZJkZp8) 오정현 목사는 자신의 박사 논문이 표절일 경우 스스로 사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력의 달콤함은 쉽게 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뚝심 있는 인물이다. 권력은 그가 태초부터 사랑하던 것이었으니. MB가 왔다며 새벽 기도회에 온 교인들을 물 먹이는 짓을 할 정도였으니. 이 경우 예배라 쓰고 퍼포먼스라 읽는다. 고 옥한음 목사도 그의 권력 지향적 모습에 우려를 표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라! 권력이 네 편이 되리니.

낙타무릎 전병욱 목사는 어떻던가. 낙타무릎이 되도록 기도에 힘쓰던 그는 목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도다. 당장 법의 심판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그는 삼일교회를 떠나며 10억을 넘는 전별금을 수령하기도 했다. 게다가 숙대를 떠나 새로 문을 연 ‘홍대새교회’는 젊은 영혼들을 끌어 모아 여전히 성행 중이다. 성폭행 논란이 일자 그는 낙타무릎답게 기도원으로 몸을 숨겼다. 기도는 문제에서 벗어나는 탈출구가 된다. 기도하라! 그러면 세상이 너를 다르게 볼 것이다.

김영길 총장은 19년간 독단적 운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때 마다 그는 자신의 진정을 호소했다. 하느님과 학교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고 있음을. 그때마다 학생들은 그의 호소에 감동했고 그의 허물을 덮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19년이 지났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이 가진 총장에 대한 신뢰, 사랑의 눈감아주기는 그대로지만 그의 전횡은 더욱 심해졌다는 점이다. 교수들조차 승진과 임용을 위해 총장 눈치를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총장을 비판하는 대자보는 찢기고, 일부 어용 교수는 비판하는 학생을 불러 쪼인트를 까댄다.

김영길 총장은 자신이 명예 총장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명예 총장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자리가 그의 주도하게 2007년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대충 흘려듣게 한다. 이유가 그럴듯하지만 슬그머니 만들어 놓은 게 아니고 뭔가. 더구나 명예 총장은 하지 않겠다면서 이사장직에 대한 말은 아끼고 있다. 문제는 자리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건 현 총장직에 버금가는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사가 아니겠는가.

한동대학교에선 언제부턴가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로 쓰인 저 구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상을 바꿀 힘도 나에겐 없으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러나 저 구호에 마음을 쏟는 이들에게 난 자신 있게 말하겠다. 그런 사랑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사랑의 까방권으로 19년간의 전횡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그런 사랑은 세상의 변화에 무기력하게 대응할 뿐이다. 불의에 침묵하라는 사랑의 기도를 듣지 마라. 적어도 그러면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3. 시끄럽게 지껄이라

옛날 인트라넷엔 ‘횡설수설’이라는 게시판이 있었다. 말 그대로 횡설수설, 갖가지 소리가 난무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i7에서는 그런 활기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난장판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사랑의 공식은 ‘좋아요를 눌러라’이다. 사랑은 말을 막는다. 말을 아껴라. 말을 막아라. 침묵하라. 사랑은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말을 막는 법을 가르칠 뿐이다. 그래서 사랑으로 대자보를 찢었다.

댓글로 논쟁이 벌어지고 다양한 논의 속에 문제가 확장되기도 하고, 구체화되기도 하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사랑은 기도하는 것이고, 기도는 침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규율을 깨뜨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만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대의 없이 말하는 법, 자기 위치에서 말하는 법을 우리는 까먹었다. 여기서 ‘좋아요’는 매우 적절한 피난처가 된다.

오랜만에 학교 인트라넷을 구경하면서 많은 대체 이토록 조용한지 의문이 들었다. 고요한 침묵만이 두텁게 내려앉아 있을 뿐이다. 침묵을 깨고 들리는 소리란 일상적인 불평뿐이다. 사실 그동안 굵직한 사건이 많았다. 지금도 밀양에선 국가가 공공연하게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누구는 칼럼에서 후쿠시마는 걱정하면서 울진이나 고리는 걱정도 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오늘날 선한 이웃이 누구인지 알려주기도 했다. (http://goo.gl/yP55rB)

그러나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세상을 바꾸라고 말하지만 그 세상은 어딘가 따로 있는 상상의 공간인가 보다. 행동하는 양심도 실천하는 지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성은?

김영길 총장이 19년간 해 놓은 일은 무엇인가? 한동을 지성이 꽃피는 공간으로 만들었는가? 아니, 우리는 그곳에서 도구적 지식, 실용적 지식만을 배우도록 강요당했다. 세상을 읽는 통찰력 대신 세상에 살아남는 기술을 배웠다. 실용적 인재. 한동에 양심이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들었는가? 아니, 우리의 양심이란 결국 천마지 근방을 벗어나지 못한다. 명백한 불의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착한 인재, 한동 인성의 현주소. 그렇다면 영성은, 영성은 어떤가? 하느님의 대학이라면 영성만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 김영길 총장은 한동에 얼마나 돈이 없는지만 확인하게 만들었다. 하느님은 갈대상자의 후원금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맘몬을 숭배하라.

앞으로 김영길 총장이 명예 총장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한동을 뒤엎으리라. 그말은 더 깊은 침묵으로 우리를 끌고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산재해 있다. 명예 총장직이 문제가 아니라 지난 19년간 독단적 운영이 문제였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건 계속되는 것이 문제다. 차기 총장 인선이 졸속으로 추진되어왔고, 성의 없이 진행중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게다가 학교 리더십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이 발언하고 참여할 기회는 여전히 봉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여전히 성스러운 지도자, 김영길 아닌 김영길을 바랄 뿐이다.

지껄이라. 시끄럽게 지껄이라. 문제를 보아야 해답의 길이 열린다.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말하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 아니면 살아가는 대로 말하게 된다. 물어보라. 그 말이 앞으로의 행동과 실천을 위한 말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배워 그대로 하는 말인지.

누군가 사랑이 없는 자라고 지적할 테다. 그렇담 나는 사랑없는자가 되겠다. 그렇게 싸구려 말속에 들어 있는 사랑이란 차라리 없는 게 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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