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들어왔습니다. 나무와 샘이는 종점 수다방에 그림책 읽기를 하러가구, 저는 꼬또리를 데리고 병원에 가러 집에 들어왔지요. 문을 여는 순간 뭔가 냄새가 나더군요. 뭘까… 싶었지만 일단 꼬또리 예방접종을 위해 빨리 집을 나섰습니다.
여차저차 진찰을 마치고 병원을 나오니, 오는 길에 눈이 폴폴 내리고 있더군요. 집에 오니 밖에 널어놓았던 빨래 거리들이 눈을 맞고 있었습니다. 꽁꽁 언 빨래를 뚝뚝 떼어 집에 들여놓고 보니 그 괴상한 냄새가 또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혹시나 작은 방에 넣어둔 귤 박스에서 귤이 썩어가는 냄새가 아닐까 생각했지요.(좀 전에 살펴보니 역시나 몇 개가 썩어가더군요. 귤은 빨랑 먹어야 합니다.ㅡㅡ;) 신발을 벗고 들어오니 혹시 전선이 타는 냄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나 냉장고 옆에 꽂아둔 요쿠르트 제조기 주변에서 강하게 냄새가 나더군요.
어이쿠나 안 되겠다 싶어 코드를 잡아 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찌잉- 퍼퍼벅 하더니(정말로 영화 효과음에 나오는 그런…) 콘센트에 불이 붙어버린 겁니다!!! 어머낫! 머릿속에 갑자기 지나가는 생각은 ‘어떻게 불을 끄지? 물을 끼얹어야 하나? 아냐! 전기인데 물을 쓰면 안 되지!’ … 불을 끌 생각을 하기 전에 차단기 부터 내리고 119에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발장 안에 위치한 차단기를 끄고 119에 전화하는데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ㅠㅠ 하긴 벽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는데 차분히 생각한다는 게 쉬운일 인가요. 게다가 샘이가 핸드폰을 가지고 놀아서 비밀번호를 걸어놓은 탓에 몇번 틀리고 나서야 119에 전화했습니다.
다행히 전화하는 동안에 콘센트에 붙었던 불이 꺼졌어요. 그래도 기왕 부른 소방 대원들이 와서 보기를 기다려야겠다 싶었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안에 연기가 자욱한 겁니다. 문을 열고 방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지요. 몰랐지만 검은 연기가 꽤 많이 나온데다 저도 연기를 꽤 마셨더라구요. 저녁 먹기 전까지 계속 기침을 해댔습니다.
10분 뒤 소방대원들이 도착했어요.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 막히지만 않았더라도 더 빨리 왔겠지요. 얼마 안 되서 사이랜 소리가 들리긴 하더군요. 집에 처음 들어온 건, 완전 무장을 한 소방수 아저씨였습니다. 일단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는 큰 일이 아니니 둘러보시고 돌아가시더라구요. 좀 있다보니 공무원 복장을 하신 분들이 와서 자세한 상황을 체크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전기가 누전된 것이 아니라 코드가 낡아서 코드에 불이 붙었던 것이었어요. 집안 전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게 다행이지요.
마음을 가다듬고 집안을 정리하러보니 그을음이 엄청 많더군요. 플라스틱 코드가 타면서 꽤 많은 그을음을 날렸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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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비백산했었습니다. 이번 경험으로, 집에 작은 소화기라도 마련해두려구요. 막상 닥치니 어떻게 할 수 없더군요. (그 짧은 시간에도 혹시 불이 번지면 무엇부터 밖으로 내놓아야 하나 순서를 따지고 있었다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느라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전을 공부하다보면 어떤 사태를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전 영 아닌가 봅니다. ㅠㅠ. 새해 벽두부터 액땜하는지…
덧: 코드를 뺄 때 코드 끝 부분을 잡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줄을 잡았기에 망정이지, 코드를 직접 잠았다면 큰일났을 거에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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