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주머니 뱃속에 차고 계수나무에 간 달아
장재화 지음, 이지은 그림/나라말

토끼전의 주인공은 당연히 꾀쟁이 토끼입니다. 물론 자라의 충절을 높이 사 자라를 주인공으로 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별주부전이라고 제목을 붙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토끼가 주인공이 되는 토끼전이 훨씬 낫습니다. 꾀쟁이 토끼를 통해 낡은 전통 가치들을 비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답답하게 임금에 대한 충절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런 풍자와 비꼼이 더 매력적입니다.

혹시 토끼전에 자라의 부인이 등장한다는 말은 들어보았나요? 자라 부인이 등장한다니 낯설기만 합니다. 그러나 자라 부인이 등장하는 판본에서는 자라 부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용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토끼 간을 구하러 떠나기 전 자라는 부인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낯선 육지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이 집안을 비웠을 때 혹시 부인이 남생이놈과 놀아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요.

#46.
“그 흉악한 놈, 남생이란 놈. 나더로 외사촌이라 하고, 형이니 아우니 하면서 아주 너털웃음 지으며 집 걱정 하지 말고 다녀오라 하지만, 그게 내 눈에 거치적거리오. 어슴푸레한 밤이면 내 집에 무엇하러 그리 자주 다니는고? 나나가도 문단속 단단히 하고 잠자리를 가려 자오. 잘못된 소문이 나기 쉬우니.”

그러나 복병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육지에서 모셔온 토끼, 토생원이 문제였습니다. 토끼는 자신의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며 둘러댑니다. 꼭 육지에서 간을 가져다 주리라 약속하고는 용왕과 거하게 술판을 벌입니다. 그러던 중 자신을 꾀어 온 자라를 도리어 위험에 빠뜨리지요. 바로 토끼의 간을 먹기 전에 자라탕을 먹어 몸을 보신하면 좋다고.

헉! 갑자기 자라 집안에 날벼락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충신이 될 줄 알았는데 자라탕이 되어 목숨을 잃다니요. 하는 수 없이 자라는 토끼에게 목숨을 구걸합니다. 이 위험에서 건져달라는 것이지요. 그러자 토끼는 자라 부인과 하룻밤 함께 자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토끼는 자라 부인과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하룻밤은 자라 부인에게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이었나 봅니다.

#125-126.
자라가 다시 토끼를 업고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이때 별부인은 토끼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해 급히 토끼에게 편지 한 장을 보낸다.

“소첩 별부인은 두 번 절하고 피로 쓴 편지 한 장을 토선생께 올리나이다. 첩은 팔자가 기박하여 열 살이 되기 전에 부모를 여의고 열다섯에 별주부를 만났사옵니다. 하오나 별주부의 성품이 모질고 부부 금슬이 부족하여 마음에 있는 설움 풀 길이 전혀 없었사옵니다. 남모르게 옥황께 피눈물로 소원을 빌었는데, 옥황이 소첩의 정성을 받아들여 준수하신 그대를 보내어 하룻밤 함께 지내게 하시니 깊고도 귀한 정이 비할 곳 전혀 없었사옵니다. … 이 몸이 죽고 죽어 만 번을 다시 죽어 후세에 여자 되어 사람 세상에 다시 나서 낭군과 서로 만나 이승에서 못다 푼 정 실컷 풀고 싶습니다. 멋도 없고 인물도 없는 별주부, 나는 싫사옵니다. 나는 이제 싫사옵니다. 붓을 잡아 스려 하니 하염없는 이 내 눈물 줄줄이 솟아나고,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

토끼를 못 잊은 자라 부인이라니!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자,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토끼는 자유의 몸이 됩니다. 그럼, 자라와 자라 부인은? 그리고 용왕은? 이 토끼전의 끝은 이렇습니다.

#150.
별부인 암자라는 토끼와 이별한 후에 그리움이 병이 되어 몇 개월 신음하다 속절없이 죽었다. 수궁에서는 그 내막을 모르고서 별주부를 생각하다 그리 되었다 하여 용왕에게 글을 올려 열녀로 표창하게 했다. 용왕도 토끼를 기다리다가 병이 점점 더하여 세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별궁으로 나가 살았다. 그 후에 정언 잉어가 죄를 입어 동정호로 유배 갔다가 마침 별주부를 만나 그 소식을 전했다. 별주부 통곡하고 그 길로 돌아와서 아황 여영께 원통한 사정을 올리고 즉시 목숨을 끊었다. 아황 여영이 그 원통함을 알고 별주부 죄 없음을 옥황상제께 아뢰니 옥황상제가 불쌍히 여겨 사신을 용궁에 보내어 별주부 충성을 알게 했다. 용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왕위를 물려 받은 세자가 별주부의 충절을 알고 그 덕을 널리 알렸다.

그 후로 수국이 태평하고 임금의 덕은 하늘과 같았으며 신하들의 공은 해와 달같이 밝았다 하니, 그 뒤야 누가 알겠는가?

토끼전은 판본에 따라 많은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히 결말도 저마다 다르지요. 어느 결말에서는 토끼는 자유의 몸이 되고, 토끼를 잃은 자라를 위해 산신령을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비록 어리석은 자라였지만 그 충정만은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위에 소개한 내용을 보면 자라의 끝은 불행하기 그지 없습니다. 게다가 자라 부인의 끝도 흥미롭습니다. 토끼를 그리워하다 죽었는데 열녀가 되었다니요.

여기에는 기존 가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숨어있습니다. 국가를 상징하는 용왕에게 충정을 다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자라의 모습을 통해 비꼬고 있습니다. 게다가 토끼를 그리워한 자라 부인이 열녀가 된 것은 어떤가요? 역시나 충절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숨어있습니다. 아무 차도 없이 용왕이 죽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이렇게 토끼전은 번뜩거리는 비판의 칼날을 숨겨놓고 있습니다. 토끼전을 본 양반들이 등짝에 식은땀이 흘렀을 모습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토끼전의 매력은 이런 비꼼의 미학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지요. 게다가 묘사하는 말들이 어찌나 생동감 넘치는 말들로 되어있는지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부분은 바로 자라가 말 실수 하는 바람에 호랑이를 부르는 부분입니다. 자신을 부르는 자라의 말에 호랑이는 날쌔게 달려옵니다. 그 달려오는 호랑이의 모습을 표현한 부분이 압권입니다. 이번 글쓰기는 이처럼 어떤 동물의 행동을 묘사해보는 글쓰기를 해보았습니다. 다양한 비유를 들어 제 각기 멋지게 표현한 글들을 만나봅시다.

#63.
“저기 앉은 저 저게 토, 토, 토, 토, 토, 토, 호생원 아니오?”

호랑이가 산중에서 생원이란 말을 처음 듣는지라, 반겨서 얼른 달려온다.

호랑이가 내려온다. 호랑이가 내려온다. 솔숲 깊은 골짜기로 한 짐승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찢어지고, 몸은 얼쑹덜쑹, 꼬리는 잔뜩 한 발이나 넘고, 동개 같은 뒷다리, 전동 같은 앞다리, 날 세운 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엄동설한에 흰 눈 뿌리듯 좌르르르르 흩뿌리며 내려온다. 주홍 입 떡 벌리고 홍행앵앵하는 소리, 산천이 뒤넘고 땅이 툭 꺼지는 듯하다. 자라가 깜짝 놀라 혼이 몸에서 떠나 버린 듯 목을 움치고 가만히 엎어졌다.

 

남연우

고양이가 화를 내는 모습이 가관이다.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털은 삐죽삐죽 솟은 것이 우거진 수풀같고, 눈은 검은 구슬 같고, 입은 뾰족뾰족한 가시 같고, 발톱과 손톱은 강철조차 베어질 것 같은 것이 갈고리 같고, 꼬리는 삐죽삐죽 하며 빼죽삐죽한 사자 갈퀴 같다. 울음 소리는 날카로운 칼날 같아서 온 세계에 울릴 정도다.

 

배강유

아니 저기~저기서 토끼가 뛰어온다. 털은 검은색과 흰색이고 머리는 사자처럼 생겼으니 종은 라이언 헤드라. 귀는 길쭉하며 쫑긋! 건드리니 화를 낸다. 몸은 털뭉치며 꼬리는 동글동글 짧으니 정말 귀엽다. 특히 뒷다리로 얼굴을 터니 이 세상에 더 귀여운 것이 있으랴! 똥을 찌~~익 싸니 동글동글하고 딱딱하며 갈색과 검은색이니 똥마저 귀엽다. 하지만 수명이 10년이 장수이니 하루살이와 다름이 없다.

 

문준영

사자가 달려온다. 사자가 초원 저 멀리에서 달려온다. 흙먼지 휘날리며 풀이 날아오르며 사자가 달려온다. 얼굴은 사납고 갈기는 목도리 같으며 발톱은 낫같고 몸은 갑옷 같다. 다리는 철통 같으며 꼬리는 채찍같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으니 온 동물 세상의 왕이 되어 온 동물 세상을 다스리며 초원을 달려 다닌다.

 

남선우

말을 보니 몸통과 다리 사이엔 큰 바위를 넣은 것 같고 흩날리는 머릿결은 비단보다 부드럽고 달리는 모습을 보니 천리를 달릴 것 같다. 매끈거리는 몸통은 얼마나 미끄러운지 미꾸라지 같고 다그닥거리는 소리는 구두를 신은 여자 같다. 뛰는 모습에 숨쉬고 걷는 모습 마저 우리나라 장군 같다.

 

정기수

달팽이가 나뭇잎을 먹는 모습을 보니 눈알은 동글동글 하고 툭 튀어나온 게 외계인 같고, 몸은 끈적끈적 하고 흐물흐물한게 음식물 쓰레기 같고, 피부는 소나무 같고, 지나간 흔적은 철길 같으며, 똥을 싸면 고무줄 같고, 등껍질이 딱딱한 건 나무같고, 등껍질이 생긴 것은 구불구불한 뙤리튼 뱀 같고, 지나다니는 걸 보고 있자니 느릿느릿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모습은 꼭 거북이 같은 모습이었다.

 

김희윤

토끼가 멀리에서 뛰어온다. 토끼의 눈은 별같이 빛나고, 토끼의 귀는 길고 긴 만리장성 같다. 토끼의 새하얀 눈빛털은 잔디같다. 토끼의 코는 새까만 구슬 같고, 다리는 쇠같이 튼튼하다. 토끼의 동글동들하고 보들보들한 꼬리는 너무 귀엽고 그 토끼의 모습은 참 귀엽다.

 

유정민

메추리. 옥구슬처럼 동글동글한 몸에 풍만한 엉덩이 씰룩씰룩하며, 좁쌀 같은 눈은 끔뻑끔뻑하며 울 때는 나팔소리처럼 우렁차다. 밥 먹을 때에는 뱃속에 한달을 굶은 거지 100명이 들어 있는 듯이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는다. 밥 먹는 모양이 이러하니 물 먹는 모습은 오죽하랴. 마치 며칠간 물을 먹지 못했듯이 허겁지겁 먹다 목에 거렸는지 우렁차게 울어댄다.

 

김영현

그 코끼리 귀는 큼지막한게 서랍장처럼 크며, 눈은 작은게 체리처럼 똘망똘망한게 정말 작고, 코는 긴게 기린 목처럼 엄청나게 길다. 발, 다리는 엄청 굵어 돼지 몸통터럼 굵으며, 발톱은 뭉뚝한게 동글한 물병같다. 몸통은 똥배처럼 툭 튀어 나와서 이제 막 터질 것 같고, 꼬리는 끝에만 뭉툭하니 이보다 귀여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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