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 근황

귀울음, 이명은 좀 나아졌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귀가 울리기는 하지만 이전처럼 머리까지 울리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준 것인지 아니면 좀 나아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진찰결과는 왼쪽 귀의 저음 청력이 떨어졌답니다. 신경이 망가진 것인지, 아니면 감기 같은 증상 때문에 일시적인지는 알 수 없답니다. 다만 스트레스를 덜 받고, 많이 쉬랍니다. 병원을 몇 군데 다녔는데 똑같은 말입니다. 보통 이명은 삐- … Read more

1981년생 Z씨 에필로그

2008년 ~ 벌써 10년이다. 2008년 뜨거운 여름 밤, 광장에서 겪은 수 많은 일 가운데 K와의 만남은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몰랐다. 그것이 악연의 시작일 줄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에스더 구국기도 모임과 연관된 사람이더라. 그뿐인가. 이승만을 국부라 칭송하는 유영익과도 친했고, 조선일보 조갑제와의 안면이 있었다. 훗날 그가 학내 대자보를 찢고,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 Read more

1981년생 Z씨 #3

2003년 ~ 2008년 2003년 복학하니 학교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장 큰 건 학부의 변화였다. 언론정보문화학부, 이른바 언정에서 기독교 문화 전공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 아침에 전공을 잃어 버릴 처지에 놓인 거다. 그래도 Z씨는 다행히 꾸역꾸역 졸업학점을 매워 원하던 바대로 졸업할 수 있었다. 거의 마지막으로. 들리는 소문에는 언정 출신이 취업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 Read more

1981년생 Z씨 #2

2000년 ~ 2002년 ‘한스트’는 뜨거운 경험이었다. 온누리 교회에서 경험한 그 아름다운 광경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 더욱 감동스러웠던 것은 똑같은 티셔츠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거대한 소속감이 그를 휘감았다. 선배들은 친절했고, 교수들도 아름다웠다. 역시 백미는 세족식이었다. 낮은 자리에서 신입생의 발을 씻겨주는 모습. 그는 생각했다.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새파란 하늘과 붉은 건물의 대조가 … Read more

1981년생 Z씨 #1

1981년~1999년 Z씨의 유년시절은 좀 달랐다. 또래들이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지방에서 서울로 삶을 전환하는 경험을 할 때 부모를 따라 역주행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외딴 시골에서 양계장을 했다. 그 전에는 고깃집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고깃집 아들일 때보다 양계장집 아들일 때 고기를 더 많이 먹었다. 쏟아지는 폐사 닭들을 먹어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또래처럼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지낸 탓에 또래들이 누린 … Read more

1981년생 Z씨 #0

큰 일을 벌이나 싶었는데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 변명을 붙여본다. ’개인의 삶 때문에…’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평범한 변명이다. 그러나 가장 솔직한 대답이기도 하다. 동성애 이슈가 폭풍처럼 몰아쳤지만 이내 식어버린 냄비 마냥 고요하다.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두터운 냉소가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기도하다. 한번 씹으면 그만이지 뭐 큰 변화를 바란다고. 모교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를 정리한다 했지만 그만큼 … Read more